[传媒 : 호주언론기사]    대지 안의 영혼 2014.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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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정원사 성범영씨는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라 하는 그런 곳을 만들었다. 30년의 시간을 들여 제주도 화산 한 켠에 생각하는 정원이라는 걸작품을 완성한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라고 했지만, 한국 남쪽 해안에서 80킬로미터 떨어지고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에 위치한 이 곳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 그 이상이었다. 이 곳은 한 사람의 열정에 찬 희생을 보여주는 화신과도 같은 곳이며, 한 한국 농부의 꿈이 현실로 피어난 곳이기도 하다.
100여 종의 2천 여 개의 분재가 있는 이 곳은 세계에서 가장 큰 분재 공원이기도 하다.
37년 간의 피나는 땀과 노력을 이 정원에 바친 한국인 정원사인 성범영씨 (오른쪽 사진)는 개혁주의 중국에서 개혁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다. (현재 중국 공산당은 경제와 문화 개혁에 대해 폭넓은 관용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로서 수백 년간 내려온 문화인 분재에 대한 관심도 다시 일어나고 있다.)
서구에서는 흔히 본사이라고 알고 있는 이 분재 예술의 명칭은 일본에서 왔으며 일본에서 번성했지만 그 근원은 2천 여년 전의 중국이고 고려 시대에 (918년부터 1392년) 예술의 형식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이 분재는 한국의 정원사인 로자공이 611년에 일본으로 전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반도의 백제왕국에 연못과 정원을 만든 후 로자공은 일본으로 건너가 수이코 시대 (592년 -628년) 호류지사에 연못을 만들고 황제의 궁에 또 다른 연못을 만들었다.
지난 30년 동안 성 범영 원장이 24헥타르의 땅에 만든 이 공원에는 수많은 대통령, 정치인, 정부 관리, 분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녀갔다. 기자들(주로 중국과 한국)도 많이 다녀갔다. 중국 기자들은 성원장의 근면성을 적극 칭송했다. 어떤 사람은 이 정원을 기적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라 일컫기도 하였다.
그 동안 이 정원을 다녀간 인사들에는 중국의 전직 대통령 장쩌민, 전 일본 총리 야스히로 나카소네, 북한 노동당 김용순 비서, 북한 김일철 인민무력부장, 또 제임스 레이니 전 미 대사도 포함되어 있다.
1963년 군 제대를 하고 난 20대 때 성 원장은 처음으로 제주도를 방문했다. 서울에 봉제 공장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면서 그 이후 1968년 제주도의 북쪽에 땅을 사기까지 5년 기간 동안 30여 차례 제주도를 방문했다. 그리고 이것이 결국 분재 아트피아로 태어난 것이다. 제주도 토착민들은 성원장이 손으로 화산 황무지를 일구는 것을 보고 미친 놈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전기도 수도도 없는 상황에서 농장을 세우고, 돼지와 가축을 키우며 수입을 올리고, 비료도 생산했다. 처음에 성원장을 미친 놈으로 불렀던 사람들이 결국 나중에는 성원장 옆에서 같이 도와 이렇게 손으로 만든 꿈을 완성하는데 도움을 주게 된다.
1968년 청원 농장이 문을 열기는 했지만 분재 아트피아가 일반 대중들 앞에 문을 열기까지는 24년 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67세인 성원장은 본인의 생애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뜨거운 태양이 내려 쬘 때나 한결같이 일을 한 그의 얼굴은 주름이 패였다기 보다는 오히려 그 세월로 부드러워 졌고, 사랑하는 분재와 이 분재를 어떻게 가꾸어왔는지 이야기를 할 때면 이 주름은 부드러운 미소로 번져나갔다.
성범영 원장의 아내와 가족도 도시 생활을 뒤로 하고 서울에서 이 제주도로 이사를 와 이 고난의 생활에 같이 동참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결혼 생활에 거의 종지부를 찍을 수도 있게 만들었던 사건이었다.
드디어 아이들과 다시 서울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떠나기 바로 전날 밤 아내는 남편이 쓴 시를 읽고, 눈에 눈물이 가득차서 다시 영원히 남편 곁에 머물기로 한다.
이 시가 바로 영주원 ? 하나님이 이 아트피아에 영원히 머무심 - 이라고 하는데 이 시는 정원 한쪽에 새겨서 정원의 일부가 되어 있다.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가 닥쳤을 때 이 정원도 위기를 맞았다. 입장객은 급격히 줄어들었고, 1998년 10월 은행에서는 성원장에게 정원을 매각하라는 통고를 내렸다. 성원장은 이렇게 회고했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 은행을 찾아 다니며 대부를 신청했지요. 하지만 나무는 담보가 될 수 없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매일 아침, 태양이 뜨는 것을 보며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지금처럼 일할 수 있게만 해 주십시오. 하나님에게 갈 때까지 나무처럼 살 수 있게만 해 주십시오.’ 그리고 나서는 평상시처럼 일을 했습니다. 차가운 바람으로부터 나무를 지켜줄 수 있도록 담 쌓는 일을 계속 한 것이죠.”
분재 아트피아는 경매에 부쳐졌고, 아시아 전역에서 분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성원장의 손에서 분재가 계속 클 수 있도록 정성을 보태주었다.
분재 예술은 바로 성원장의 인생 예술을 상징하기도 하여, 그는 고통을 통해 아름다움이 피어난다고 믿는다. 그는 분재에 대해 좁은 화분에 심어 나무의 성장을 억제하고, 가지를 뒤틀어지게 하고 알루미늄 선과 막대기로 고정하는 것은 고문하는 것과 같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경악을 금치 못한다.
“목적을 가지고 나무의 모양을 교정해 주는 것은 변형과는 다릅니다. 나무의 생리와 본성에 맞추어 키우는 것은 사람이 인격을 연마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과 기술, 시간, 노력이 필요하지요.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분재를 키우는 것은 엄격한 규율을 세워 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를 훌륭한 지성인으로 키울 때 끊임없는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듯 나무를 아름다운 분재로 키우기 위해서는 사랑과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화산 현무암으로 쌓은 높은 돌담이 동해를 통해 불어 오는 차가운 겨울 바람으로부터 나무들을 지켜 주며 돌로 된 오솔길이 잘 다듬은 잔디와 조용하고 명상적인 공간, 그리고 폭포에 이르기까지 구석구석 자리잡은 정교하고 아름다운 분재로 가득한 경이의 나라로 방문객들을 이끌어 준다.
멋진 연못이 붉은 소나무 사이로 조용하게 자리잡고 있고, 그 연못에서는 여러 가지 색을 띤 거대한 금붕어들이 뛰어 놀며, 관광객들이 다가가면 반짝이는 금색, 은빛, 오렌지색 비늘을 자랑하는 잉어들이 먹이를 찾아 뛴다.
정원 구석구석에는 성범영 원장님의 보석, 즉 직접 가꾼 분재들, 한국 전역에 걸쳐 수집하여 멋진 화분에 옮겨 심은 분재들이 보석처럼 박혀 있다.
방문객들은 40센티미터도 되지 않는 30년 된 배나무가 보통 배와 똑 같은 크기의 배를 맺어 달고 서 있는 모습과 70년 된 모과 나무 열매가 똑 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 모습, 500년 된 향나무와, 200년 된 주목이 마디마디 비튼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을 경이에 차서 바라본다.
조용한 길을 따라 150년 된 느릅나무가 전시되어 있다. 화산 바위를 뚫고 나와 살아 남은 그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며…. 잎사귀들은 마치 나무가 아니라 바위에서 그대로 치솟아 나온 듯한 모양을 하고 있다.
나무 자체로 본다면 아름답다 할 수 없으나, 생명의 증언처럼 보이는 최면술과 같은 아름다움을 뿜는 이 나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잠깐 서서 묵상을 할 수 밖에 없는 위엄을 갖추고 있다.
성원장이 정원을 일생의 목표로 삼고 매진해 왔다기보다 정원과 함께 나이가 들어 왔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되돌아 보면, 그 때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을 알았더라면…… 모르겠습니다.” 이 정원이 처음 시작되었던 때는 “제가 젊었을 때였고, 정원 이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성원장은 지상의 낙원을 만들기 위해 애써왔던 것은 아니고 또 이 정원을 낙원이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그에게 이 정원은 아직도 미완성이고, 지금도 계속 자라고 있는 중일 뿐. “낙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길 찾는 사람들이 많이 들 그렇게 부르지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어요. 하루에 12시간에서 16시간씩 일을 하곤 했습니다. 일 하면서 바위를 옮기고 벽을 쌓다가 여덟번이나 몸을 다치기도 했구요. 손목과 어깨, 다리, 허리도 다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직원들이 생겼어요.”
화산 바위 수 만개를 날라 하나씩 손으로 수고스럽게 만든 높은 돌문을 지나 정원에서 빠져 나오는 우리를 성원장은 손들어 배웅해 주었다.
오후에 햇살이 긴 그림자를 만들고 그늘에 보이는 나무들 사이에서 정원과 성원장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 둘은 마치 하나로 보였던 것이다.

호주언론기사 - 글,사진 : 빈센트 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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