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传媒 : ]    광명일보성범영과 그의 <<분재예술원>> 2014.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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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영과 그의 <<분재예술원>>

<<하늘, 땅, 햇빛, 바람, 구름, 비, 이웃, 제주도, 조국, 이런 것들이 나의 창작의 원동력이 되어 나의 30여년을 지켜주었습니다. 우리 분재예술원의 분재예술이 더 빛나서 여러 분들이 한 농부의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소박하고 정이 넘치는 말은 한국제주도 <<분재예술원>> 원장 성범영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와 한 말이다. 성범영은 중등키에 얼굴색이 검고 머리칼은 백발이다. 오랜 세월의 노동 때문에 두 손은 거칠고 손마디가 굵다. 낡은 작업복을 입었는데 세월의 풍상을 겪은 얼굴에는 친절한 웃음이 비껴있었다. 그야말로 농부처럼 순박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농촌에서 태어나서 이곳에서 30여년을 일해온 농부입니다.>> 성범영은 농부와 같이 굳센 의지가 있었기에 3만 평방미터가 되는 황지를 금수천지로 만들 수 있었다. 그가 재배한 100여종의 온대 및 아열대 활엽수목이 윤택이 도는 푸른 잎사귀를 펼쳐들고 바람에 나부끼며 여러가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가 배육해낸 2천여개의 조형이 각이한 예술분재는 웅위하고 강의하고 창망하고 울창하고 미묘하고 아름답고 품위있고 수려하다. <<금방 시작할 때에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지나온 세월을 추억하며 노인의 어조는 무겁고 평온했다. 30여년전 성범영은 서울에서 작은 회사를 꾸렸다. 1963년에 처음으로 제주에 왔다가 섬의 원시적인 자연 경치에 깊이 현혹되었다. 이 황지에서 농장을 개척해 녹색과 아름다움이 넘치는 낙원을 창조하려는 꿈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 해에 그는 제주로 이사를 와서 돌로 대강 집을 짓고 농부생활을 시작했다.    <<그 때 여기에는 수돗물도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빗물을 받아쓰고 초롱을 켜고 일했습니다. 친척, 친구들은 제가 미친줄로 알았답니다. 하지만 저는 계속 황지를 일구고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나무심는 기술을 배웠습니다. 지금 저는 인생이란 바치는 것만큼 수확할 수 있다는 점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노인에게서는 그의 굳센 의지가 엿보였다. 나무를 심으려면 흙이 있어야 하는데 제주도에는 흙이 부족했다. 그는 돌멩이를 한차한차 주어내고 멀리에서 흙을 실어왔다. 그렇게 하루 종일 일하다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 몰랐다. 그동안 그는 5차나 돌에 상해 병원에 입원했다. 성범영에게 가장 큰 고난은 자금이 부족한 것이었다. 그는 외지에 가서 노동을 해 번 돈을 분재원 건설에 투자하곤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무들이 하루가 다르게 더 아름다운 자태를 펼치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낍니다.>> 나무들의 자태에서 그는 분재예술에 매혹되었다. 그는 여러 곳에 가서 가르침을 받고 여러모로 연구하고, 직접 재배하며 실천하는 가운데서 자신의 독특한 새 기술을 개발해 분재예술가로 된것이다. 분재예술원을 참관하러 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게 됐다. 사람들은 그의 분재예술에 매혹될 뿐 아니라 그가 쓴 <<설명문>>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다음과 같은 설명문이 있다. <<이 나무는 수령이 100여년이 넘습니다. 이 나무는 세 개 나무를 합쳐놓은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은 합쳐놓은 것이 아닙니다. 본디 한그루의 나무였는데 가운데가 썩어서 속이 넓어진 것입니다. 나무는 본래 목질부인 가운데 부분이 약하고 표피부분이 강합니다. 나무도 속을 썩여야 넓어지는 것처럼 사람도 속을 썩여야 마음이 넓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 어떤 설명문은 또 분재 제작 방법을 소개하기도 한다. <<수차례 반복하여 교정을 하면서 점차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사람도 교육을 받고 자신과의 싸움 끝에 훌륭한 인간으로 바뀌듯이 식물도 인간의 정성과 사랑을 먹으면서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분재제작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움도 시간을 가지고 서서히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요?>> 이런 설명문은 언어가 소박하고 청신하고 독특한 매력이 있다. 적지 않은 참관자들은 설명문을 묵묵히 읽거나 메모한다. 성범영은 또 자신의 실천을 총화해 <<분재 10덕>>을 총화해냈다. 그중에는 <<자연의 위대한 섭리를 깨달아 무리한 욕심을 갖지 않게 된다.>>, <<모든 것에 대한 사랑과 겸손, 양보의 미덕을 키울 수 있다.>>, <<창의성과 지혜로움을 배울 수 있다.>> 등이 있다. 노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분재를 잘 이해해야만 분재를 잘 감상할 수 있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분재는 실내에서만 키우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분재는 야외에서 키워야 더 건강하고 아름답습니다.>> 성범영이 분재를 도자기 화분에 담고 있는데 그 중 많은 도자기는 중국에서 사온 것이다. 중국에 대해 말할 때 노인은 숙연해지면서 저으기 흥분했다.  <<1995년에 저희가 가장 곤란할 때에 강택민 주석이 우리 분재원에 왕림해 친필로 제사를 써주셨습니다. 1998년에 호금도부주석이 이곳에 왕림하셔서 저의 간고창업하는 개척정신을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그 격려의 말씀이 저에게는 큰 힘이었습니다. 저는 큰 고무를 받았고 저의 분재원에 더 자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노인은 중국에 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1996년 이래 그는 중국에 26차나 다녀왔다. <<분재는 중국에서 발원해 한국을 통해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중국문화에 대해 저는 깊은 경모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의 큰 유감이라면 중국의 녹화기획설계 및 원림수준이 세계 선진수준에 비해 거리가 먼 것입니다. >>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얼마 전에 북경식물원을 참관한 적이 있는데, 아직도 60년 전의 기술을 쓰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국제수준의 새 기술을 중국에서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 그는 중국의 10여개 도시를 다녀왔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로변과 거리 중심, 공원에 모두 비슷한 녹화대가 있어 도시와 도시 사이의 구분 점을 알수 없었습니다. 그 도시에 알맞은 독특한 식물경관은 정신을 정화시킬 수 있어 도시의 보귀한 재부이고 훌륭한 관광자원이 됩니다.>> 그는 중국 해당 부문에서 원림건설 등에 대해 전문적인 연구를 하고 좋은 기획을 내옴으로써 원림예술면에서 중국이 가지고 있던 원유 수준과 세계에서의 지위를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랐다.

중국 광명일보 기사 - 리찡루이, 류씨챈, 룽찐 기자 _ 200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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