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传媒 : ]    농민 대사의 한중(韓中) 소회(所懷) 2014.06.07

농민 대사의 한중(韓中) 소회(所懷)

성범영 원장이 중국과 한국간의 ‘민간대사’가 된 것은 1995년 11월 17일 장쩌민(江澤民) 주석이 성범영 원장이 운영하는 분재예술원을 방문한 때 부터이다. 이미 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감정이 격해진다고 성범영 원장은 말하고 있다. 10월 중순 어느 날 나는 돌연 주한 중국대사관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강택민 주석이 방한 기간에 분재예술원을 방문할 예정이니 준비하라는 것이었지요. 소식을 접하고 나는 한국의 농민을 대표하여 국빈을 접대하게 되었다는 사실과 분재예술원이 이제 외국 원수의 승인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날부터 나는 직원들과 더불어 근 20여일 동안 분재예술원 안팎을 두루 청소하고 간략한 사진 전람관을 마련했습니다. 안 사람은 준비기간 내내 이른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습니다. 하나님이 보우하시어 11월 17일에 절대로 비가 내리지 말고 맑은 가을 날씨가 되도록 기원한 것이었지요.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이 돕는다고 했지요. 11월 17일은 정말로 보기 드물게 청명한 날씨였습니다. 미풍이 산들 불고 따사로운 햇살이 가득했습니다. 강택민 주석은 분재예술원을 두루 살펴보면서. 시시때때로 수목의 명칭이나 조형에 대해 질문을 던졌고, 설명이 불충분하다고 생각되면 나에게 다시 한 번 묻기도 했습니다. 예정된 참관 시간은 30분이었으나 어느새 40분이 넘고 말았지요. 강주석은 친히 붓을 들어 기념 글씨를 남겼으며, 진귀한 예물을 저에게 건넸습니다. 기자는 성범영원장을 따라 예술원의 가운데로 걸어갔다. 그 곳에 석비(石扉)가 하나 서 있었는데, 그 안에 ‘1995년 11월 17일 분재예술원에서 ‘江澤民’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전체 3만 평방미터에 달하는 분재예술원은 1992년 7월 30일 개원한 이래로 중국 관람객들이 그치지 않고 방문하는 명소가 되었다. 성 원장은 “많은 중국인들이 나를 보고 ‘민간대사‘라고 부르는데 나는 그 이름을 대단히 좋아합니다”라고 말했다. 지금도 중국인들이 방문하면 성 원장이 직접 시간을 내어 관람객을 안내하면서 예술원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설명을 해주며, 때로 다실(茶室)로 안내하여 함께 차를 마시며 우정을 나누기도 한다. 성범영 원장 역시 이미 여러 차례 중국 인사들의 초청을 받아 중국을 방문한 바 있으며. 양주에 있는 분재원과 우호협정을 맺어 교류를 하고 있기도 한다. 1963년 성범영 원장은 24살의 나이로 처음 제주에 발을 디뎠다. 그는 아열대의 수려한 풍광에 사로잡혀 제주도에서 나무를 심고 옥토를 가꾸어 낙원을 건립하겠다는 꿈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그는 돈이 없었다, 그래서 일단 서울로 돌아간 후 양복점을 열어 돈을 벌기 시작했다, 경영을 잘 한 그는 몇 년 만에 크게 성공하여 몇 개의 점포와 공장을 소유하게 되었고 토지와 부동산도 살 수 있게 되었다. 돈이 생기자 제주도에서 낙원을 세우겠다는 자신의 꿈이 또 다시 뇌리에 떠올랐다. 1968년 그는 마침내 제주도에서 황무지를 사들여 분재원을 창업하였다. 이 후 수 십년 동안 그는 서울에 있던 점포와 공장, 부동산과 토지들을 모두 팔아버렸으며, 부인과 자녀들까지 모두 제주도로 불러들였다. 어떤 이는 그를 보고 ‘미친사람’이라고 손가락질을 해댔지만 그는 그냥 웃을 뿐이었다. 30여 년의 신고(辛苦) 속에서 성범영 원장의 꿈은 마침내 현실이 되고 말았다. ‘분재예술원’으로 들어와 생기가 충만한 온갖 형태의 분재를 감상하게 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한 농민의 집착에 가까운 이상 추구의 고상한 품격에 감동하게 될 것이다. 예술원에 놓여있는 1천 여 종이 넘는 분재들은 마치 다음과 같이 말하는 듯하다. ‘뜻이 있으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원예에 문외한이었던 성범영 원장은 몇 십년간의 실천을 통해 원예대사(大師)이자 분재예술가로 변신하게 되었다. 그는 분재예술원은 다음 세 가지 조건을 반드시 갖추어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첫째, 분재원은 수종이 다양하고 나무의 형태가 풍부해져야 한다. 둘째, 분재와 서로 어울릴 수 있는 아취(雅趣)있는 환경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셋째, 설계와 계획, 그리고 연출력을 갖추고, 자연을 사랑하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경영자가 있어야 한다. 참관을 마치게 되면 다른 중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성범영 원장이 함께 기념 사진을 찍자고 할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당신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분재예술원의 발상지는 중국입니다. 이후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전해졌지요.” 그의 결론을 들으며 사람들은 그의 중국에 대한 감정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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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세계언론 광명일보_ ‘생각하는 정원’이 불러일으킨 사색 2014-06-07 1627
43 세계언론 광명일보성범영과 그의 <<분재예술원>> 2014-06-07 1487
42 세계언론 농민 대사의 한중(韓中) 소회(所懷) 2014-06-07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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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세계언론 인민일보_ 도시의 부를 가져다주는 보물로 만들자 2014-06-07 1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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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세계언론 신민반보_ 제주 '미치광이' 와 가족의 섬 생애 2014-06-07 1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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