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传媒 : ]    신민반보_ 제주 '미치광이' 와 가족의 섬 생애 2014.06.07

제주 '미치광이' 와 가족의 섬 생애

그는 한국 제주도의 ‘미치광이’이고 ‘돌에 미친 사람’이다. 38년 전 젊은 시절에 아내와 자식을 떠나 혼자서 돌멩이만 가득한 제주도에 와 황막한 섬을 아름다운 밭으로 만들려고 생각한 사람이다. 그는 한번 먹은 마음을 굽힐 줄 모르는 ‘한국 우공’이다. 그는 나무에 반했고 나무를 사랑했다. 모든 정력을 몰부어 끝내는 황막한 돌밭에 세계에서 유일한 분재정원을 만들어냈다. 그의 분재원은 ‘생각하는 정원‘이라는 철학적인 의미가 깊은 이름을 갖고 있다. 그가 바로 원장 성범영이다. 그는 자연에 대한 감격의 마음으로 나무를 사랑하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이 정원을 바쳤다. 전임 중국국가주석 장쩌민, 현임 국가주석 후진타오, 일본 전임수상 나까소네 등 세계 여러 나라 원수들이 선후로 이 생각하는 정원을 방문했는데 모두가 그 아름다움과 우아함에 감탄했다. 장쩌민은 생각하는 정원에 ‘한 농부의 개척정신을 따라 배워야 한다.’ 라는 글을 남겼다. 38년 동안 생각하는 정원 주인 성범영은 보통 인간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정신 및 육체의 고통을 감내했다. 그는 자신이 힘들 때면 ‘아내의 사랑과 지지가 힘이 돼주곤 했다’고 말하곤 한다. 근일 기자는 상해에서 전기적인 색채를 띤 이 한국‘농부’를 만나게 되었다. 1. 분재인생의 시작 1968년 전 퇴역군인이었던 성범영은 서울에서 잘 나가는 사업을 경영했다. 서울의 몇몇 북적거리는 큰 거리에 와이셔츠가게가 있었고 와이셔츠 가공공장도 가지고 있었다. 서비스를 잘하고 원단도 질 좋은 것이어서 성범영의 와이셔츠 가게는 날로 흥성했다. 미국 포드대통령, 닉슨 대통령이 방한할 때의 수행인원들과 경호원들이 모두 그의 가게에 와서 와이셔츠를 맞춰갔다. 가게의 고객 중 태반이 외국인이었다. 성범영과 아내는 오누이를 키웠는데 아내는 전형적인 한국여성이었다. 온순하고 현숙하고 사리가 밝았다. 일가 네 식구는 부유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았다. 도리대로 말하면 이렇게 안일하게 살아가는 것도 참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성범영은 왜인지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늘 채 하지 못한 일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그의 꿈을 말할라치면 196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그는 금방 군에서 퇴역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제주도를 소개하는 방송을 들었다. 대학교수들이 제주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제주도가 아름답기도 하고 가난하기도 하다고 했다. 이 때 그는 불쑥 제주도에 살고 있는 전우를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몇 시간의 바다여정을 거쳐 그는 제주도로 갔다. 초겨울이었지만 그는 서울의 썰렁한 풍경과는 다른 생기에 넘치는 풍경을 보게 되었다. 나무는 푸르고 감귤은 나뭇가지에 가득 매달려있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수돗물도 없었지만 곳곳에 푸른 나무들이 경이롭기만 했다. 어려서부터 나무를 좋아했던 그는 이곳에 나무를 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하지만 그 때 그는 아직 밥 먹기도 어려운 상황이어서 꿈을 가슴속 깊이에 간직하고만 있었다. 사업이 점차 안정되자 그는 오래 전의 꿈을 다시 꾸기 시작했다. 전세기 70년대 초부터 성범영은 서울과 제주도사이를 빈번히 들락거렸다. 사업이 잘돼 돈이 생기면 바로 제주도의 황무지를 샀다. 스물네 곳에 땅을 사서 오늘의 생각하는 정원 규모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한 달에 한번씩 왔다. 땅을 개간하고 돌담을 쌓고 원목으로 문을 짜서 달고 조경용 나무들을 구매해 들였다. 분재에 대해 성범영은 독학하여 전문가가 된 사람이다. 늘 밤을 새우며 분재에 관한 서적을 읽고 전문가를 방문해 자문하곤 했다. 점차 분재에 입문하게 되자 그만 분재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가 제주도에서 돌멩이를 캐고 나무 만지는 재미에 빠져있을 때 아내는 서울에서 혼자 오누이를 키우면서 공장과 가게를 경영했다. 성범영은 제주도에 가는 차수가 점점 많아지고 제주도에 묵는 시간도 점점 더 길어졌다. 아내는 한번 원망하지도 않고 묵묵히 그를 지켜보기만 했다. 어느 한번 몇몇 친구들이 제주도에 그를 보러 왔다. 그런데 그가 남루한 옷차림에 자르지 않아 어깨까지 흘러내린 긴 머리를 하고 말 몇 마디 없이 돌멩이만 나르는 모습을 보고는 적이 놀랐다. 친구들은 슬그머니 서울로 돌아가 그의 아내에게 말했다. “아마도 정신이 이상해진 모양입니다. 어서 그 사람 정신병원에 데려가 봐요.” 아내는 웃기만 했다. 남들이 성범영을 미친 사람이라고 해도 그는 남편의 마음을 가장 잘 알았다. 그곳 주민들도 그를 돌멩이와 나무에 미쳐버린 사람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기다려보시오. 이 곳을 제주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 테니까.‘라고 대답하곤 했다. 2. 인간의 한계와 아내의 힘 1974년, 성범영은 서울에서 성공한 사업을 버리고 아예 호적을 제주로 옮겨왔다. 아내는 종종 그를 보러 제주로 오곤 했는데 번마다 성범영은 지친 모습이었다. 농장을 빨리 꾸리기 위해 성범영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노동자들과 함께 돌을 캐고 나무를 심고 분재를 자르곤 했다. 하지만 돌멩이는 캐고 또 캐도 끝이 없이 나왔다. 어느 날 그는 혼자서 일하다가 갑자기 목을 상했는데 밤이 되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파났다. 7척 남아였지만 그 아픔이 하도 심해 큰소리로 울어버렸다. 그는 아내에게 전화를 했지만 아내는 한밤중에 올 방법이 없었다. 겨우 이튿날을 기다려 병원으로 가서 진통제를 맞고서야 공항으로 갔다. 비행기에 앉은 그는 아픔을 참을 수 없어 그만 까무러쳤다. 그렇게 간신히 김포공항에 도착했고 울면서 기다리던 아내가 그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병원에서 50여 일 동안 입원치료를 했다. 그는 이와 유사한 부상 때문에 여섯 번이나 병원에 입원했다. 1980년, 아내는 아이들을 서울에 남겨두고 제주도에 와서 남편 뒤 시중을 했다. 그 때 농장은 초창기여서 매일 10-20명이 일했다. 식사는 모두 아내가 준비했다. 그 때를 회상하며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그 때는 매일 금방 아침 설거지를 끝내고 나면 바로 점심준비를 해야 했어요. 금방 점심을 먹고 나면 또 새참을 준비하고 바로 이어서 저녁준비를 해야 했지요.” 아내는 농장과 집 사이에서 오가며 매일 바삐 보내다보니 몇 번이나 병으로 드러누웠다. 방학이면 두 아이도 농장에 와서 어른을 도와 돌을 줍고 날랐다. 몇 년 동안 아이들은 부모를 떠나 서울에서 공부를 하면서 사춘기를 보냈고 대학에 붙었다. 성인이 된 다음에야 아들은 분재원에 와서 아버지와 함께 사업하게 되었다. 아들에 대해 성범영은 아버지로서 대견함과 위안을 느꼈고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했다. 그렇게 바삐 보내다보니 아내는 아마도 한계를 느꼈던 모양이다. 매일 수많은 나무에 물을 주고 거의 20명이 되는 사람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또 돼지 3천 마리를 키워야 했다. 어떤 때에는 돼지 십 여 마리가 분만해 새끼를 받아내기도 했다. 기독교를 믿는 아내는 매일 아침 울면서 기도했다. “하느님이시여, 오늘 일할 수 있는 힘을 주세요.” 아마도 자신이 쓰러지면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을 일이 걱정됐던 모양이다. 어느 날 아내는 성범영에게 간절히 말했다. “저와 아이들을 놓아주세요. 제가 서울에 가서 와이셔츠 공장을 경영해서 돈을 보낼 터이니 다른 사람을 고용하세요...” 성범영은 아내를 막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내에게 남아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아내가 가면 몹시 쓸쓸할 거라는 생각만을 했을 뿐 자기에게 아내가 얼마나 중요하고 그동안 아내의 힘이 얼마나
신민반보 기사 - 쟝라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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